공황장애: 상처받은 기억은 없어지지 않는다
- 김철권 정신건강의학과

- Jun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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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Jun 17
수년 전 겨울, 개인 사업을 하는 한 40대 남자가 외래를 방문했다. 어느 토요일 오후, 그는 오랜만에 시간을 내어 아내와 함께 백화점을 찾았다. 주말 오후라서 그런지 백화점은 사람들로 무척 혼잡했고 그는 쇼핑하는 아내를 따라 걷다가 갑자기 호흡 곤란을 느꼈다. 숨을 쉬기가 어려웠고 심장은 터질 듯이 뛰고 바로 서 있기 어려울 정도로 어지러웠다.
그는 매장 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아 안정을 취하려 했지만 감당할 수 없는 불안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순간, 이러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엄습해 왔다. 그는 아내의 부축을 받아 거의 기다시피 해서 백화점을 빠져나와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에서 주사를 맞고 잠이 들었고 곧 호흡 곤란과 불안은 썰물처럼 사라져버렸다. 다음 날 순환기내과와 호흡기내과를 방문하여 정밀 검사를 받았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다.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공포를 느낄 정도로 심한 불안이 밀물처럼 엄습했다가 갑자기 썰물처럼 사라진 양상으로 보아 그가 경험한 증상은 전형적인 공황 발작이었다.
“왜 그런 증상이 나타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원인은 무엇입니까?” 그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대부분은 원인을 알기 어렵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그래도 제 생각에는 무슨 원인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도록 교수님께서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당연히 도와드리죠. 같이 노력해봅시다.”
그 후 그는 규칙적으로 외래에 왔다. 약을 복용한 후 이전에 보였던 증상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공황 발작이 왜 나타났는지 그 이유를 궁금해 했다. 나는 그를 만날 때마다 제일 처음 공황 발작이 일어난 그 상황을 떠올리게 하고 자유연상을 통해 어떤 이미지가 마음속에 떠오르는지를 물었다. 그러기를 6개월. 어느 날 그가 나를 찾아와 흥분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교수님, 드디어 그 원인을 알아냈습니다. 제가 찾아냈습니다. 그 원인을 제가 찾아내었다고요!” 그의 목소리와 몸은 흥분으로 떨리고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무슨 원인인지 한번 들어 봅시다.” 내가 그를 진정시키며 자리에 앉혔다.
때는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인 1984년 12월 어느 겨울날.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던 그는 그날따라 반 친구들과 놀다가 오후 늦게 귀가했다. 집이 가까워지자 그의 가슴은 언제나처럼 뛰기 시작했다.
“너만 아니면 엄마는 벌써 집을 나갔다. 너 하나 보고 산다.” 알코올 중독자이던 아버지의 술주정을 견디지 못할 때마다 어머니는 그를 안고 이렇게 속삭이곤 했다.
“버티기가 정말 어렵구나. 나를 용서하지 마라. 혹시 네가 학교 마치고 집에 왔을 때 내가 없거든 할머니에게 가거라. 아마 너를 돌봐주실 거다.”
어느 날 어머니는 그를 꼭 껴안은 채 울면서 말했다. 그 말이 비수가 되어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날 이후로 그는 학교 수업을 마치면 언제나 쏜살같이 뛰어서 집에 왔다. 집에 오는 내내 그의 가슴은 쿵쿵거렸다. 엄마가 집에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그의 가슴은 차분해졌다. 그런데 조금 늦게 귀가한 바로 그날, 집에 도착해 보니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온 집안을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엄마는 없었다. 옷장을 열어보니 엄마 옷만 눈에 띄지 않았다. 그는 반사적으로 집을 뛰쳐나와 기차역으로 뛰기 시작했다. 뛰는 동안 앞을 보지 못할 정도로 눈물이 흘렀다.
연말이라 기차역은 많은 사람으로 혼잡했다. 그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엄마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어디선가 가수 이선희의 <J에게>라는 노래가 들려왔다. 그는 몸을 돌려 이번에는 시외버스 터미널로 뛰기 시작했다. 그의 온몸은 땀으로 범벅되었고 너무 오래 뛰어서인지 두 다리는 감각이 없었다. 시외버스 터미널 역시 엄청난 인파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두 눈을 부라리며 엄마를 찾았지만 끝내 엄마를 발견할 수 없었다. 엄마! 하고 고함을 질렀지만, 입 밖으로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이번에도 이선희의 <J에게>라는 노래가 들려왔다. 그는 갑자기 숨을 쉬기 어려웠고 어지러웠다. 그리고 쓰러지듯이 털썩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런데 말이죠, 교수님. 이번에 백화점에서 바로 그 노래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J에게>라는 노래 말이죠.” 그의 얼굴은 눈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온통 사람들로 꽉 찬 백화점에서 바로 그 노래를 들었습니다. 저는 몰랐죠. 왜 갑자기 가슴이 그렇게 뛰고 숨이 가빠오고 어지러웠는지.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그는 외래 진료실 소파에 얼굴을 묻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어머니를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죽는 날까지.” 그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이 세상에 상처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지 상처가 없는 척하거나 기억을 못할 뿐이다. 그 상처의 넓이와 깊이만 다를 뿐이다.
오늘도 나는 정신과 외래에서 사람들의 상처가 말하는 수많은 소리를 듣는다. 몸속 깊숙이, 의식 저 너머 깊숙이 숨어버린 상처가 생각으로, 감정으로, 행동으로 교묘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본다.
상처받은 기억은 결코 망각되지 않는다. 단지 모습을 위장할 뿐이다. 그 상처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그리고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섬세하고 신비로운지 환자들을 통해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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