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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il in Woods

사회공포증: 나를 바라보는 시선

Updated: Jul 2

30대인 그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문제로 외래를 방문했다.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그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 같고, 자기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편치 않은 느낌이 든다고 한다. 무시하려고 해도 자꾸 신경이 쓰이다 보니 마음이 괴로워 나를 찾아왔다. 


  처음 외래를 방문한 날, 그가 나에게 물었다. 

  “왜 저는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시선에 그렇게 신경을 쓰지요?” 

  그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핵심 질문이다. 그 질문에 대해 정신과적 진단명은 ‘사회공포증’이고, 태어날 때부터 유전적인 소인이 있어서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성장 과정에서 상처받은 기억이 있을 수 있고, 최근 연구에 의하면 뇌의 어느어느 부위에 신경전달물질의 이상이 발견되고... 등등 교과서에 적혀있는 대로 대답할 수 있다. 그러나 모두 막연하고 애매하고 영양가 없는 말이라서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환자 교육을 위해 성심성의껏 설명하고 그가 끝까지 주의 깊게 들었다고 해도 왜 그가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시선에 그렇게 신경을 쓰는지 이해시킬 수는 없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그 대답을 듣는 환자는 전혀 만족하지 못한다. 우스꽝스럽게 말하면, 당신에게 그런 문제가 있는 이유는 사회공포증이라는 병에 걸렸기 때문이고 사회공포증에 걸린 이유는 바로 당신에게 그런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이상한 논리에 빠지게 된다. 

  나는 질문에 대한 대답 대신 오늘 처음 왔으니 나에게도 시간을 좀 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몇 번의 면담을 거쳐 그런대로 대략적인 윤곽을 그릴 수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꽤 알려진 목사로서 교회 신도들에게는 한없이 자애롭지만 자녀들에게는 아주 엄격했다. 어느 정도 엄격한가 하면 집안에서 정한 규칙을 어길 때는 추운 겨울에 밖에 나가 1시간 동안 벌을 서야 할 정도였다. 

  “어렸을 때 벌 받은 기억이 많지만 가장 기억나는 것은 중학교 1학년 때 제 가방에서 포르노 잡지가 발견되어 벌을 받은 일입니다. 그때는 친구가 학교에 가져왔기에 호기심에 하루만 빌려달라고 해서 집에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저녁에 그것을 발견한 아버지가 마치 내가 사탄이라도 되는 것처럼 입은 옷 그대로 집에서 나가라고 하는 겁니다. 사정을 설명하고 잘못했다고 아무리 빌어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도 내 편이 되어 아버지에게 매달려 한 번만 용서해 주라고 애원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추운 겨울날 현관문 밖에서 내복만 입은 채로 오돌오돌 떨었습니다. 복도식 아파트라서 같은 층 사람들이 저를 보았고 추운 것보다 그 시선을 견디기가 더 어려웠습니다. 그때는 정말 부끄럽고 수치스러웠습니다.” 

  그가 고개를 숙인 채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과거를 회상했다. 

  “저도 제가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 그 일과 연관이 있다는 생각은 막연하게 하지만 뭔가 확실하게 잡히지 않습니다.” 그가 덧붙여 말했다. 


  그때 내가 준비한 그림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림을 보는 순간 그는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 순간적으로 깨달은 것처럼 보였다. 이게 내가 좋아하는 원 포인트one-point 정신치료다. 

  이때 가장 중요한 점은 해석할 타이밍을 맞추는 것이고, 그가 아하! 할 정도로 통렬하게 느끼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자에 대해서는 그가 자신의 입으로 추측되는 문제의 근원을 말할 때까지 기다렸고 후자에 대해서는 말보다는 그림 한 장을 준비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그토록 미워하는 가혹한 아버지의 특성을 동일시를 통해 자신의 초자아로 받아들였고 의식적으로는 초자아의 그런 가혹한 면을 받아들일 수 없기에 그것을 외부의 다른 사람에게 투사한 것이다. 자기 자신 안에 있는 초자아가 자신을 감시하고 관찰하는 것을 마치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으로 투사한 것이다. 


  “결국은 제가 저 자신을 감시하고 관찰하는 것이군요.” 

  그림을 보고 그가 말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머릿속의 눈은 저의 눈입니까? 아니면 아버지의 눈입니까?” 그가 물었다. 

  “같은 눈입니다. 당신의 눈이 바로 아버지의 눈입니다. 아버지의 눈이 당신 안으로 들어와 당신의 눈이 되었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나는 그에게 다른 사람의 시선이 느껴질 때마다 이런 역동을 떠올리고 “아! 또 내 머릿속의 그 눈이 작동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편해질 거라고 했다. 그래도 너무 불편하면 그때마다 먹을 수 있도록 비상약도 처방했다. 

  진료실을 나서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 오기 전에 다른 몇몇 정신과 의원에 다녔습니다. 그리고 1년 이상 개인 면담도 받았습니다. 그때는 초자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동일시, 투사, 이런 말을 많이 들었는데 다 이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잘 모르겠다고 하기가 좀 그래서 그냥 이해하는 척 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은 단칼에 제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오늘 제게 설명해 주신 내용은 정말 최고의 처방입니다. 감사합니다.”

  그의 말을 들은 나는 약간 으쓱해져서 그의 등 뒤에 대고 한마디를 더 했다. 

  “다음 시간에는 ‘잘 모르겠다고 하기가 좀 그래서’라는 그 말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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