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화 장애: 목에 무엇이 걸려 있어요
- 김철권 정신건강의학과

- Jun 2
- 3 min read
Updated: Jun 17
한 70대 할머니가 외래를 찾아와 하소연한다. 두서없이 말하는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다. 한 많은 삶이다.
“할머니, 오늘 여기 오신 이유는 뭡니까? 뭐가 제일 불편합니까?” 내가 묻는다.
“목에 무엇이 걸려 목구멍을 막고 있어서 음식이 넘어가지 않아. 이비인후과에서는 아무 이상 없다고 하는데 참말로 환장할 노릇이네.”
“할머니, 뭣이 걸려 있는 것 같습니까?”
“의사 양반, 내가 그걸 어찌 알겠소. 그걸 알면 내가 여기 왜 찾아왔겠소?” 할머니가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할머니, 제가 한번 알아맞혀 볼까요?”
“말해보소. 의사 양반 생각은 어떤지.”
“할머니, 할머니 목구멍을 막고 있는 것은 할배입니다. 할배가, 그 미운 할배가 할머니 목구멍을 꽉 막고 있는 것 아닙니까? 제 말 맞지예?.”
할머니는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결혼하고 오십 평생 따뜻한 말 한마디 안 해 주고, 그 괴롭던 시집살이할 때 손 한번 안 잡아주고, 소처럼 일만 시킨 할배가 미운 것 아닙니까? 늘 바람피우고, 술 마시고, 할머니는 자식 때문에 살아온 인생 아닙니까? 그 미운 할배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이제는 목까지 막힌 것 아닙니까? 제 말이 맞지예?”
할머니는 말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용서하지 마이소. 사람들은 다 잊어버리라고 하지만 그게 어디 잊힙니까? 절대 잊어버리지 말고 용서하지 마이소. 미운 할배는 그렇다 치더라도 할머니는 살아야 될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밥 먹을 때 밥이 할배라 생각하고 꼭꼭 씹어 넘기이소. 미운 할배라고 생각하면 잘 씹힐겁니다.”
묵묵히 내 말을 듣던 할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한마디 한다. “의사 양반이 용하네. 내 마음을 어찌 그리 잘 아노?” 그리고 한마디 덧붙인다. “무덤까지, 내, 영감 용서하기 어렵데이. 잘못 만난 인연인기라.”
목에 무엇이 걸린 것 같은 이물감 때문에 외래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 여자다. 그들에게 심리적 갈등 때문에 그런 신체 증상이 나타난다고 말하면 대개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신체화 장애’라는 정신과적 진단명을 말하면 더더욱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다. 그보다 자신을 가장 괴롭히는 사람이나 사건, 기억 때문이라고 설명하면 쉽게 알아듣는다.
오래전에는 외항 선원의 부인이 이런 증상을 자주 보였다. 일년에 한 번 잠시 집에 왔다가 다시 바다로 가 버리는 남편, 집에 있는 동안에도 따뜻한 말 한마디 없이 늘 술만 마시는 남편, 아내는 그런 남편이 야속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외로움을 말하기에는 바다에 떠 있는 남편의 삶이 얼마나 고단할까 생각되어 그런 기색조차 내비칠 수 없었다.
시어머니 눈에는 그 험한 바다의 풍랑과 싸워 가며 돈을 벌어 오는 아들에 비해 육지에서 보내는 며느리의 삶은 너무나 편하고 안락해 보여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떻게 번 돈인데 너는 그 고마움을 알기라도 하나?’ 며느리를 보는 시어머니의 눈길은 늘 그런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시어머니의 간섭은 심해지고 아무것도 모르는 자식들은 자기 요구만 늘어놓고 혼자 지새는 밤이 많아질수록 며느리는 몸이 아프기 시작한다.
다양한 신체 증상 중에서도 특히 목에 이물감을 느끼는 증상을 호소한다. 잘 삼키지 못하고, 먹어도 소화 시키지 못하는 증상은 주위 사람들에게 엄청난 효과를 발휘한다. 처음에는 하찮은 병으로 보던 시어머니도 며느리가 먹지 못하면 결국 두 손을 들고 만다.
“아가야. 뭐라도 먹어야 산다.” 시어머니는 구하기 힘든 귀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며느리를 돌보기 시작한다. 이전에는 그토록 말해도 귀담아듣지 않던 시어머니가 달라진 것이다. 입으로 말할 때는 들은 척도 않다가 몸으로 말하니 그제야 알아듣는 것이다. 시어머니는 오랜만에 육지를 밟은 아들에게도 이전과 달리 며느리가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말하면서 신경 쓰라고 타이른다.
이처럼 마음의 고통을 몸으로 보여주면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물론 며느리의 이런 증상은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것이지 의도적인 것은 전혀 아니다. 마음이 아프기 때문에 몸이 아픈 것이다. 프로이트는 성적 욕구가 해결되지 않아서라고 해석하지만 조금 넓게 보면 모든 심리적 갈등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최근에는 남편과 자식 문제로 그런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때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해준다.
“아들놈이 목구멍을 막고 있네요.”
“남편이 목구멍을 막고 있네요,”
“딸이 목구멍을 막고 있네요.”
가슴이 답답한 증상을 보이는 경우에는 남편이, 아들이, 딸이 가슴을 누르고 있다고 말해준다. 그러면 그들은 즉각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린다.
환자분들이 ‘아하!’ 하며 공감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것, 그게 치료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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