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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il in Woods

약물치료: 정신과 약을 먹어 보는 정신과 의사

나는 37년 동안 정신과 의사 생활을 하면서 지금까지 내가 환자에게 처방했던 약은 모두 먹어 보았다. 임상 현장에서 처방하는 용량에 비하면 1/2이나 1/4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직접 먹어 보았다. 이유는 하나다. 환자들이 먹고 불편하다고 호소하는데, 어떻게 불편한지 얼마나 불편한지 내가 알아야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주로 주말을 이용해 복용해 보았다.


복용한 약 중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단연 정신병 치료제였다. 지금도 고생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는 약이 있다. 정신병 치료제 중에서 오래된 약(구약)인 클로르프로마진 100mg을 먹고 너무 까라져 주말 내내 잤고, 할로페리돌 5mg을 먹고 목이 돌아가 바로 누울 수가 없었던 적도 있었다. 이런 부작용이 있는 약을 내가 먹는 용량의 몇 배나 되는 양을 먹고 생활해야 하는 환자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많이 아팠다.


어느 날 매일 클로르프로마진 500mg을 복용하던 한 입원 환자가 새로운 정신병 치료제(신약)인 올란자핀 5mg을 먹고는 눈물을 글썽이며 "선생님, 몸이 너무 가벼워요"라고 말했을 때 나는 그 환자의 심정이 어떠한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도 둘 다 먹어 보았기 때문이다.


조증 치료제인 리튬 300mg이나 데파코트 500mg을 먹었을 때는 마치 물에 젖은 솜처럼 아주 불쾌할 정도로 무기력했던 기억이 난다. 그에 반해 우울증 치료제(신약)나 불안 치료제는 정신병 치료제에 비하면 불편한 정도가 가벼웠다. 오래전에 개발된 우울증 약들은 입안이 타들어 가듯이 바짝 마르고 변비가 생기고 까라져 견디기 힘들었지만, 새로 나온 우울증 약(신약)들은 속이 좀 메스껍고 어지럽고 머리가 무거운 두통이 있었지만 견딜 만했다.


때로는 다른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의뢰되어 온 환자의 경우, 그 병적 증상을 고려하더라도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약을, 그것도 높은 용량으로 처방한 것을 볼 때는 나도 모르게 이 말을 중얼거리게 된다.


"니가 묵어봐라, 한번."


이 말을 하면 언제나 영화 〈친구의 대사 한마디가 떠오른다.


"고마해라. 마이 뭇다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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