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 외로워하지 마라. 너의 곁에는 항상 내가 있다
- 김철권 정신건강의학과

- Jun 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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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Jun 17, 2025
조현병을 앓고 있는 37세 여자 환자다. 외래를 방문하면 언제나 잘 지낸다는 말만 해서 나도 그냥 약만 처방하고는 별말없이 돌려보낸다. 그게 벌써 몇 년째다.
수년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형제들이 환자가 어머니와 함께 살던 아파트를 처분해서 각자 자기 몫을 챙겨가고 환자는 원룸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다. 생활비는 언니와 남동생이 분담해서 매달 주는데 얼마인지는 본인이 말하기를 꺼려 알지 못한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는 (아버지는 오래전에 돌아가셨다) 늘 환자와 함께 외래에 왔다.
평소 환자 어머니는 자신이 죽으면 위치도 좋고 평수도 넓어서 가격이 상당히 나갈 것으로 생각되는 자기 아파트를 환자 명의로 해 놓고 환자의 언니나 남동생 가족이 그 아파트에 와서 환자와 함께 살기 바란다고 했다.
그리고 환자 앞으로 매달 일정 액수의 돈이 나가도록 해 놓았고 그 돈 관리는 환자의 언니와 남동생에게 맡겼다고 했다. 환자 어머니로부터는 그렇게 들었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어머니가 바란 대로 되지 않은 것 같았다.
며칠 전에 그 환자가 언니로 보이는 여자와 함께 왔다. 언니는 외래 진료실에 들어오자마자 흥분한 목소리로 환자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제가 미치겠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자꾸만 해서.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할지.”
“일단 자리에 앉으시죠. 처음 뵙는 것 같습니다.”
내 말에 언니는 약간 머쓱한 표정을 짓더니 자리에 앉았다. 언니의 이야기는 이랬다.
한 달 전에 갑자기 환자가 찾아와 “내가 한 남자를 사귀고 있다. 서로 사랑한다. 그 남자가 이전에 어머니와 함께 살던 집으로 이사를 했다. 어머니와 살던 그 아파트다. 그러니 같이 가자”라고 하더란다.
하도 졸라대서 함께 갔더니 환자의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어찌나 당황스럽고 미안하던지. 둘이 함께 가서 사실을 확인했는데도 환자는 여전히 똑같은 말만 반복한다. 동생은 눈만 뜨면 그 집을 매일 가서 집 주인이 동생을 고소까지 한 상태다. 대략 그런 내용이었다.
언니가 말하는 동안 환자는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언니가 하는 말이 사실인지 물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환자를 보고 언니가 다시 화를 냈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장사도 안되고 먹고 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너는 무슨 걱정이 있노? 누가 너보고 돈을 벌어오라고 하나? 그냥 가만히 있어도 밥 먹여 주고 재워 주고 하는데 도대체 무슨 지랄이고?” 언성을 높이는 언니를 잠시 밖에 나가 있게 하고는 환자와 둘이 이야기했다.
“언니 말로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하던데 언제부터 사귀기 시작했습니까?”
사귄다는 남자에 대해 내가 관심을 보인다고 생각했는지 그녀의 표정이 밝아진다.
“좀 되었어요. 교수님께 말하기도 그렇고 해서... 그냥 있었지요.”
“자주 만나나요?”
“매일 만나요. 하루에도 서너 번”
“그렇군요. 그런데 그 사람이 이전에 어머니와 함께 살던 집으로 이사 왔다는 것은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그 남자가 직접 저에게 말했어요. 이사 왔다고. 그래서 알게 되었어요.”
“만나서 들었다는 말입니까?”
“예.”
“주로 어디서 만납니까?”
“어디서든 만나요. 그가 어디로 오라고 하면 그곳으로 가요. 그러면 제게 말해요. 사랑한다고.”
“그렇군요. 가장 최근에는 어디서 만났는가요?”
“어젯밤에요. 어젯밤에 어머니와 살던 집 앞에서 그를 만났어요. 그가 무척 반갑다고 하면서, 이제 우리 둘이 함께 여기서 살면 되겠다고 말했어요.”
“그렇군요. 그 남자를 처음 만난 곳은 어딘가요?”
“편의점이었어요. 몇 달 전에 제가 집 근처 편의점에 갔는데 그 남자가 먼저 들어가고 제가 뒤따라갔어요. 그 남자가 제가 들어올 때까지 문을 잡고 있었어요. 절 보고 미소를 지었어요. 그때부터 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외로워하지 마라. 너의 곁에는 항상 내가 있다.> 그 남자가 그렇게 말하니까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어요. 교수님도 아시다시피 제 주위에는 아무도 없어요. 저는 늘 외로워요. 언니도 동생도 제가 전화를 걸면 바쁘다고만 해요. 그런데 그 남자가 하는 말을 들으니 외로움이 사라졌어요. 이제는 그 사람이 없으면 전 살 수가 없어요. 제게는 그 사람뿐이에요.”
언니는 환자를 입원시키겠다고 하고 환자는 입원하지 않겠다고 맞섰다. 외래에서 치료해보겠다고 내가 언니를 설득했다. 고소당한 문제는 진단서를 제출하면 문제가 없을 거라고 언니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환자에게는 두 가지를 약속하면 언니가 입원시키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나는 더 이상 어머니와 함께 살던 집에 찾아가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귀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 외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것이다. 그녀는 내 제안에 동의했다.
우리는 2주에 한 번씩 외래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녀의 환청은 사랑받고 싶은 자신의 내적 욕망이 밖으로 나가 실제 현실이 되어 목소리로 되돌아온 것이었다. 내가 그녀에게 그 남자의 역할을 대신해 줄 수는 없으므로 시간을 두고 서서히 환자를 환각의 세계에서 현실로 이끌어야 한다.
그러나 솔직히 그런 계획이 의미가 있는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 현실의 외로움을 환각으로 메울 수 있다면 그것은 그리 나쁘지 않은 방어 기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외로워하지 마라. 너의 곁에는 항상 내가 있다.> 때때로 내게도 누군가 그런 말을 해 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환자에 대한 단상]
이런 환자를 보면 정신과 의사는 대체로 이렇게 생각한다. 아! 이 환자는 환청이 있구나. 하루에도 서너 번 그 남자를 만난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환청의 빈도frequency가 높구나. 그 환청에 따라 어머니와 함께 살던 집까지 찾아가는 행동으로 옮기는 것으로 보아 그 정도severity도 심하구나. 현실감을 잃고 완전히 증상의 세계에 빠져있구나. 상태가 심해서 입원을 시켜야 하겠구나.
입원을 시킨 후에는 환청이 없어질 때까지 약의 용량을 올려야 되겠구나. 증상을 파악하고 호전되는 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겠구나. 상상 속의 그 남자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고 있으니 색정 망상erotomanic delusion도 함께 다루어야 하겠구나.
그렇지만 왜 그런 환청과 색정 망상이 생겼는지, 왜 환청 속의 남자가 하필이면 어머니와 살던 그 집에서 환자와 함께 살자고 했는지는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약을 쓰면 환청이나 망상이 감소하거나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약을 많이 쓰면 환자는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축 처져서 하루 종일 잠만 잘 것이다. 그것을 보고 정신과 의사와 환자의 언니는 환자가 좋아졌다고 할 것이다. 정신의학은 그렇게 가르치고 정신과 의사는 그렇게 교육받아 왔기에 그런 접근 방식은 아주 자연스럽다.
나는 환자가 “어젯밤에 어머니와 살던 집에서 그를 만났어요”라고 말할 때 환청임을 알았고 “그가 무척 반갑다고 하면서 이제 우리 둘이 함께 여기서 살면 되겠다고 했어요”라고 말할 때 왜 그런 환청이 생겼는지를 짐작했다.
‘아! 정말 이 환자는 어머니와 함께 살던 때를 그리워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그 환자의 환청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 그 남자를 처음 만난 곳이 어딘지 물었고 환자는 아무 방어도 하지 않고 그대로 진실을 말해주었다.
<외로워하지 마라. 너의 곁에는 항상 내가 있다.> 그 남자가 하는 말을 듣고 환자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고 했지만 나도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환자는 “저는 늘 외로워요. 언니도 동생도 제가 전화를 하면 바쁘다고만 해요. 그런데 그 남자가(어머니가) 하는 말을 들으니 외로움이 사라졌어요. 그 사람이(어머니가) 없으면 저는 살 수가 없어요. 저에게는 그 사람(어머니) 뿐입니다”라고 말했는데 내게는 그 남자가 다 괄호 속의 어머니로 들렸다.
내가 환자의 언니에게 취한 행동도 일반적인 정신과 의사와 다를 것이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환자의 보호자를 질책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그건 내가 아무리 환자에게 애정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환자의 가족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말 마음고생이 많지요. 환자에게 화가 난다는 것은 애정이 있다는 말입니다. 화가 나더라도 연민의 눈으로 동생을 봐주기 바랍니다. 얼마나 외로웠으면 그렇게 했겠습니까? 지금 언니 외에 믿고 의지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함께 노력해 봅시다.”
내 말에 언니는 “불쌍한 것”이라고 혀를 차며 눈물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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